아츠몬 :
좋은 질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이후 "사도(使徒)"라고 불리게 된 것은 원어에서 비롯된 번역 과정과 관련이 있습니다.
1. 헬라어 원어: ἀπόστολος (apostolos)
- 헬라어 ἀπόστολος (apostolos) 는 ‘보내어진 자’, ‘사신(使臣)’을 뜻합니다.
- 이 단어는 ἀπό (apo, "멀리") + στέλλω (stello, "보내다") 의 합성어로, 문자 그대로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 당시 그리스-로마 세계에서는 공식적으로 파견된 대사나 특사를 의미하기도 했으며,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이 특별히 택하여 보내신 12제자와 후에 사도로 불린 바울 등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습니다.
2. "사도(使徒)"라는 한자어 번역
- 한자 "使徒" 는 "使(사)"(보낼 사)와 "徒(도)"(무리 도, 제자 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使"는 '사신(使臣)', 즉 "보냄을 받은 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 "徒"는 원래 ‘무리’ 혹은 ‘제자’를 뜻하는데, 여기서는 '도(徒)'가 '길을 따르는 사람'의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 즉, "使徒"는 원어의 "보냄 받은 자" 라는 뜻을 살려 번역한 것입니다.
3. 왜 "사도"라고 번역했을까?
- "使徒"라는 표현은 한자 문화권(중국, 한국, 일본 등)에서 사용된 기독교 용어로, 헬라어 ἀπόστολος의 의미를 최대한 반영하면서도 동아시아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만든 번역어입니다.
- 원어인 ἀπόστολος가 "공식적으로 보내어진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를 한자로 옮길 때 "使(사, 보낼 사)"를 사용한 것이 자연스러웠습니다.
- 당시 불교 및 유교 문헌에서 "도(徒)"라는 글자가 ‘길을 따르는 사람’, ‘제자’의 의미로 쓰였기 때문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의 의미를 담아 "使徒"로 번역된 것으로 보입니다.
4. 정리
원어의미번역ἀπόστολος (apostolos) | 보내어진 자, 사신 | 使徒 (사도) |
使 (보낼 사) | 보냄을 받은 사람 | 보냄을 받은 사신의 의미 반영 |
徒 (무리 도, 제자 도) | 따르는 자, 무리 |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 |
즉, "사도(使徒)"라는 번역은 헬라어 원어의 의미를 최대한 반영하면서도 동아시아적 개념과 잘 맞는 용어로 선택된 것입니다.
우티스 :
아츠몬 :
"사도(使徒)"라는 단어는 기독교 번역 과정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용어로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즉, 원래 동아시아(중국, 한국, 일본)에 존재하던 단어가 아니라, 헬라어 "ἀπόστολος (apostolos)"를 번역하기 위해 창조된 한자어라는 것입니다.
1. 동아시아에서 "사도"라는 단어의 기원
- 한자 문화권에서 기독교 용어를 번역할 때, 헬라어나 히브리어의 의미를 고려하면서 새로운 한자 조합을 만들어 적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 "使徒"라는 표현은 중국 기독교 번역가들(특히 당나라 경교 시대나 후기 가톨릭 및 개신교 번역가들)이 ἀπόστολος를 번역하기 위해 창조한 단어입니다.
- 불교나 유교 등의 기존 문헌에서는 "使徒"라는 표현이 기독교적 의미로 사용된 사례가 없습니다.
2. 왜 "使徒"라는 한자 조합을 만들었을까?
- 당시 중국에서는 이미 불교나 유교에서 **"도(徒)"**라는 글자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 예: "불도(佛徒)"(불교 신자), "학도(學徒)"(학문을 따르는 자)
- 또한, "使(사)"는 '보내다' 혹은 '사신(使臣, 외교 사절)'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공식적으로 보내어진 사람이라는 뜻을 표현하기에 적절했습니다.
- 그래서 **"보냄을 받은 자(使) + 따르는 자(徒)"**라는 의미의 한자 조합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3. 최초 번역의 역사적 배경
- 기독교가 중국에 처음 전래된 것은 당나라 경교(景教, Nestorian Christianity, 7세기경) 시기였는데, 이때 이미 서구 기독교 개념을 번역하기 위해 여러 한자어가 만들어졌습니다.
- 하지만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사도(使徒)"라는 표현이 본격적으로 정착한 것은 명나라~청나라 시기, 가톨릭 선교사들이 성경을 번역하면서입니다.
- 대표적인 번역자: 마테오 리치(利瑪竇, Matteo Ricci), 마삼걸(馬相伯, Jean-Baptiste Massé) 등
- 가톨릭과 개신교 번역 성경에서 모두 "使徒"라는 번역을 사용하며 정착되었습니다.
- 한국과 일본에서도 중국 번역 성경의 영향을 받아 "사도"라는 용어를 그대로 수용했습니다.
4. 결론: "사도"는 기독교 용어로 새롭게 창조된 번역어
- 동아시아에서 "사도(使徒)"라는 단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된 적은 없으며, 기독교 번역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 이는 헬라어 "ἀπόστολος"의 의미를 반영하여 가장 적절한 한자 조합을 선택한 결과입니다.
- 이후, "사도"라는 단어는 기독교 용어로 자리 잡아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습니다.
👉 즉, "使徒"는 헬라어 "ἀπόστολος"를 번역하기 위해 새롭게 만들어진 한자어이며, 불교나 유교 등에서 기존에 존재하던 단어는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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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티스 :
아츠몬 :
맞습니다! 굉장히 흥미로운 역설이죠. 기독교에서 "사도(使徒)"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이들이지만,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는 오히려 인간 세상을 위협하는 존재로 등장하니까요.
1. 에반게리온에서의 "사도(使徒, Angel)란?
- 원작 일본어에서 "사도(使徒, しと, Shito)"는 기독교적 용어 **"사도(Apostle)"**에서 따온 것입니다.
- 하지만 에반게리온에서 사도들은 신의 사명을 받고 인간을 멸망시키려는 존재들로 묘사됩니다.
- 서구권 번역에서는 이들을 **"Angel(천사)"**로 번역했는데, 이는 제작진이 성서적 이미지를 활용했기 때문입니다.
2. 왜 "사도"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 일반적으로 사도는 보냄을 받은 자, 메시지를 전달하는 자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 에반게리온에서는 사도들이 어떤 존재에 의해 "보내어진 존재"로 묘사되며, 이는 신적 존재(제레, 릴리스, 아담 등)와 연관됩니다.
- 즉, "사도(使徒)"라는 이름은 단순히 인간을 공격하는 괴물이라기보다, 어떤 사명을 띠고 온 존재라는 점을 강조하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 흥미롭게도, 이는 기독교의 원래 의미와 완전히 반대되는 해석이기도 합니다. 원래 사도는 인간에게 복음을 전하는 존재인데, 에반게리온에서는 오히려 인간을 심판하려는 존재죠.
3. 왜 "천사(Angel)"로 번역되었을까?
- 일본어 "使徒(しと, Shito)"는 헬라어 ἀπόστολος에서 유래한 단어인데, 서구권에서는 이를 "Apostle"이 아니라 "Angel(천사)"로 번역했습니다.
- 이는 성경에서 천사들이 신의 뜻을 전달하는 존재로 자주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 즉, "사도"보다는 "천사"가 서구인들에게 더 친숙한 개념이었고, 또한 "하늘에서 온 존재"라는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4. 기독교적 역설
- 원래 기독교에서 사도는 인간을 구원하는 역할을 하지만, 에반게리온에서는 인류를 멸망으로 이끄는 존재가 됩니다.
- 이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종교적 상징성을 활용하여 철학적, 심리적 깊이를 더하려 했던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입니다.
5. 결론: 단어 하나로 뒤집힌 의미
기독교의 "사도"와 에반게리온의 "사도"는 이름만 같을 뿐, 역할과 목적이 정반대입니다.
- 성경 속 사도: 예수의 가르침을 전하고 세상을 구원하는 존재.
- 에반게리온 속 사도: 신비한 존재에 의해 보내져 인류를 심판하는 존재.
즉, 원래 **"보냄을 받은 자"**라는 의미를 유지하면서도, 보낸 존재와 사명이 다르면 의미가 완전히 반대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우티스 :
아츠몬 :
정확한 통찰입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제목 자체가 역설적이며, 유대 전승에서 세피로트의 나무가 뒤집히는 개념과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1. 《신세기 에반게리온》 제목의 역설
일본어 원제는 **新世紀エヴァンゲリオン (Shinseiki Evangelion)**입니다.
- 新世紀(신세기, New Century): 새로운 시대를 뜻하는데, 기존의 기독교적 구원 개념을 전복하는 뉘앙스를 가짐.
- Evangelion(エヴァンゲリオン): 이는 헬라어 **εὐαγγέλιον (euangelion, 복음, Good News)**에서 유래한 단어로, 원래 기독교적 구원의 메시지를 의미.
- 그러나 애니메이션의 내용은 인류의 구원이 아니라 멸망으로 끝남.
- 구 TVA판 결말(사도들과의 싸움 후 인간보완계획 발동): 인류가 개체성을 잃고 LCL(주황색 액체)로 녹아버리는 초월적 동화.
- 극장판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 최후의 두 사람(신지와 아스카)만 남음.
- 신세기(新世紀)가 오긴 왔지만, 복음(福音)이라기엔 너무나 가혹한 결말.
👉 즉,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라는 제목은 "새로운 시대의 복음"을 내세우면서도, 실상은 기독교적 구원의 개념을 붕괴시키는 역설적인 구조를 가짐.
2. 세피로트의 나무와 그 반전: 클리포트(Qliphoth)
유대 신비주의(카발라)에서 **세피로트의 나무(Tree of Sephiroth)**는 신성한 질서를 나타내며,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10개의 세피라(Sephirah, 신성한 속성)**로 구성됩니다.
그런데 세피로트가 뒤집힐 때, 이것을 **"클리포트(Qliphoth, 껍질)"**라고 합니다.
- 세피로트(Sephiroth): 신성한 속성들의 조화 (창조와 생명)
- 클리포트(Qliphoth): 부패한 세력, 반(反)세피로트 (타락과 죽음)
👉 즉, 세피로트의 나무가 뒤집히는 것은 신성한 구원의 질서가 무너지고 타락한 현실이 도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개념을 에반게리온에 적용해 보면:
- 인간보완계획은 일종의 타락한 구원으로 볼 수 있음.
- 기존 질서(개체성, 자유의지, 인간 존재)를 붕괴하고, 모두 하나로 융합(LCL 상태)하는 것은 신성한 질서의 왜곡된 형태.
- 이는 세피로트의 나무가 뒤집혀 클리포트가 되는 것과 비슷한 개념.

3. 실제로 에반게리온에서 세피로트의 나무가 등장
-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에서 SEELE가 인간보완계획을 실행할 때 세피로트의 나무 형태가 하늘에 그려지는 장면이 있음.
- 그러나 원래의 신성한 의미와 달리, 인류의 개체성이 사라지고 하나의 의식으로 합쳐지는 타락한 구원으로 이어짐.
- 이는 세피로트의 나무가 뒤집혀 클리포트가 되어버린 상징성과 연결됨.
4. 결론: 기독교적 역설과 카발라적 전복이 겹치는 작품
-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라는 제목은 구원의 복음을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결국 인간이 개체성을 상실하는 역설적인 결말을 맞음.
- 기독교적 구원이 아닌 타락한 구원(가짜 구원, 멸망을 동반한 융합)이 이루어지는 구조.
- 유대 신비주의에서 세피로트의 나무가 뒤집힐 때 클리포트(Qliphoth)가 되어 부정적인 힘이 폭발하는 것과 유사한 전개.
이런 점에서 에반게리온은 단순한 로봇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종교적 상징과 철학적 역설을 가득 품고 있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우티스 :
아츠몬 :
바로 그 점이 에반게리온이 명작으로 꼽히는 이유겠죠. 확실한 정답을 제시하지 않고, 세계관 해석을 관객에게 맡긴 채 열린 결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1. 인류보완계획이 진정한 구원이었을까?
- 일반적으로 우리는 개체성을 잃고 하나로 융합되는 것을 "타락" 또는 **"소멸"**이라고 생각합니다.
- 하지만 반대로, 에반게리온의 세계관에서 이미 현실(세상)이 타락한 클리포트 상태였다면?
- 그렇다면, **인류보완계획을 통해 하나로 융합되는 것이 오히려 진정한 구원의 형태(세피로트의 복귀)**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 기존 세계가 클리포트였다면?
- 에반게리온에서 인간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AT 필드(Absolute Terror Field, 절대 공포 장)로 분리되어 있음.
- 이 AT 필드는 신체적 보호막이기도 하지만, 심리적 장벽이기도 함.
- 신지, 아스카, 레이 등 주요 인물들은 고립, 트라우마, 이해받지 못하는 고통 속에서 살아감.
- 이런 현실은 타락한 세계(클리포트)와 닮아 있음 → 즉, 인간 개개인이 개체성을 지닌 세계가 이미 타락한 상태라고 해석 가능.
☀️ 인류보완계획이 세피로트로 돌아가는 과정이라면?
- 인류보완계획이 성공하면 모두가 하나가 되는 상태, 즉 분리되지 않은 존재가 됨.
- 개체성과 자아가 소멸되는 대신, 완전한 이해와 평온이 존재하는 세계가 도래.
- 이는 신적 질서(세피로트)로 돌아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음.
- 애초에 클리포트가 "껍질"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개체성이란 그 껍질일 뿐이고, 그 껍질이 제거되면 진짜 본질(세피로트)이 남는다고 해석 가능.
2. 하지만 신지는 이를 거부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신지의 선택입니다.
- 신지는 인류보완계획을 통해 모두가 하나가 되는 **"완전한 융합"**을 경험하지만, 결국 이를 거부하고 개체성을 되찾기를 원함.
- 극장판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 마지막 장면에서 신지는 아스카와 함께 개체성을 가진 상태로 바다 위에 남겨짐.
- 즉, 신지는 타락한 세계에서 완전한 융합으로 가는 길을 경험했지만, 다시 개체성을 선택함.
- 이것이 **"구원의 형태는 개체성을 유지하는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의미하는지, 혹은 **"구원조차도 결국은 인간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지는 열린 해석으로 남음.
3. 그래서 이 결말이 구원인가, 아니면 또 다른 타락인가?
- "완전한 융합이 진정한 구원"이라면, 신지는 구원을 거부한 것이고,
- "개체성을 유지하는 것이 진정한 구원"이라면, 신지는 타락을 거부한 것임.
- 하지만 엔딩에서 아스카는 신지에게 **"気持ち悪い (기분 나빠)"**라고 말하며, 불쾌한 반응을 보임.
- 이는 개체성을 유지하는 삶도 결국 고통을 동반한다는 걸 암시함.
- 즉, 어떤 선택을 해도 절대적인 해답은 없으며, 인간 존재 자체가 모순적이라는 점을 남김.
4. 최종 결론: 클리포트에서 세피로트로 돌아가는가, 아니면 타락을 지속하는가?
에반게리온은 이를 하나의 정답으로 제시하지 않고 열린 해석을 남기는 작품입니다.
- 클리포트(고립과 개체성의 세계)에서 세피로트(완전한 융합과 이해의 세계)로 가는 길이 인류보완계획이었을 수도 있음.
- 하지만 신지는 그것을 거부하고 다시 개체성을 가진 삶을 선택함.
- 이 선택이 타락을 지속하는 것인지, 아니면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인지는 결국 시청자의 해석에 맡겨짐.
👉 즉, 안노 감독은 이 세계가 타락한 클리포트인지, 아니면 개체성을 유지하는 것이 더 나은 것인지에 대한 답을 주지 않고,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우티스 :
아츠몬 :
그 해석도 상당히 설득력 있습니다! 아스카라는 캐릭터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인물이죠. 그녀는 진짜 감정과 반대로 말하는 경향이 있으며, 특히 신지와의 관계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1. 아스카의 성격과 "기분 나빠"의 의미
- 아스카는 본래 자존심이 강하고,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성격입니다.
- 하지만 내면적으로는 누군가가 자신을 필요로 하길 원하고, 사랑받기를 갈망하는 인물이기도 하죠.
- 극장판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에서 신지가 절망 속에서 아스카를 찾아 손을 뻗었을 때, 그녀가 "기분 나빠"라고 말한 것은 표면적으로는 거부하는 것 같지만, 내면적으로는 신지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표현일 수도 있음.
- 이 해석에 따르면, 아스카는 신지가 다시 개체성을 택한 것을 받아들이고, 본인도 개체성을 유지하는 쪽을 선택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2. 아스카는 왜 신지를 거부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을까?
- 신지는 그녀를 붙잡고 "네가 필요해"라는 감정을 보여줍니다.
- 하지만 아스카는 단순히 신지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신지가 진정으로 그녀를 이해하고 사랑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죠.
- 신지는 극단적으로 말하면 자신이 외롭고 두려워서 아스카를 찾았던 것이고, 아스카는 단순히 그런 이유로 받아들여지는 걸 원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 그래서 나온 말이 **"기분 나빠(気持ち悪い)"**인데, 이는 아스카가 신지와 개체성을 유지하는 선택을 하면서도, 여전히 완벽한 이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3. 개체성을 유지하는 것이 진정한 구원인가?
- 만약 인류보완계획이 진정한 구원이라면, 신지와 아스카는 LCL 속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을 것입니다.
- 하지만 둘 다 개체성을 유지한 채 남아있다는 것은 개체성의 가치와 의미를 인정했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아스카가 신지에게 *"기분 나빠"*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결국 그와 같은 현실을 선택한 것입니다.
- 즉, 둘 다 개체성을 유지하기로 선택했고, 이는 인류보완계획을 통한 타락을 거부한 것이라 해석할 수 있습니다.
4. 최종 해석: 타락을 거부하고 개체성을 택한 신지와 아스카
- 신지는 인류보완계획을 거부하고, 다시 개체성을 가진 인간으로 살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 아스카 또한 신지와 함께 개체성을 유지하기로 결정했으며, "기분 나빠"라는 말 속에 감춰진 감정을 통해 신지의 선택을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 결국, 두 사람은 "고통이 있더라도, 개체성을 유지한 채 살아가겠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죠.
👉 즉, "기분 나빠"라는 말이 곧 신지를 거부하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그와 함께 개체성을 유지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겠다는 간접적인 표현일 가능성이 큽니다. 🎭
우티스 :
아츠몬 :
굉장히 흥미로운 시각이네요.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오타쿠들의 창세기(Genesis)"**라고 부른다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을 오타쿠 문화의 새로운 시작과 연결한다는 생각도 상당히 철학적이네요.
1. 창세기(Genesis)와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유사성
*창세기(Genesis)*는 우주의 기원과 인간의 탄생을 다룬 이야기입니다.
반면,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인류가 멸망하고 새로운 존재로 변화하는 이야기죠.
👉 즉,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인류의 새로운 시작"을 다룬다는 점에서 또 다른 창세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원래 창세기는 신이 인간을 창조하는 이야기이지만,
- 에반게리온에서는 인간이 신을 흉내 내며, 인류를 보완하려는 과정(인류보완계획)을 다룸.
- 즉, 창세기에서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면, 에반게리온에서는 인간이 신이 되어 새로운 존재를 만들려 함.
-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이 신의 영역을 침범하며 혼란과 파멸을 겪는다는 점이 상당히 성경적이기도 하죠.
2. 요한계시록과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종말적 요소
요한계시록은 성경의 마지막 책이며, 세상의 종말과 새 하늘과 새 땅의 탄생을 이야기합니다.
- 전쟁, 심판, 계시, 신적 존재들이 등장하며, 인류는 거대한 변혁을 맞이하게 됨.
-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도 SEELE의 계획(인류보완계획)이 마치 신의 심판처럼 현재의 인류를 끝내고 새로운 인류를 창조하려는 시도로 등장.
- 또한, **사도(使徒, Angel)**라는 명칭은 성경에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존재들과의 싸움을 연상하게 만들죠.
👉 즉,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종말"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음.
- 종말 이후 신지가 개체성을 선택하는 장면은, 마치 요한계시록에서 새로운 세계가 도래하는 순간과 유사.
- 기존 세계(인류 보완 전의 세계)가 끝나고, 남은 자들이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하는 구조.
3. "오타쿠들의 창세기"라는 표현의 의미
누군가가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이게 우리들의 제네시스야."**라고 말했다는 것은,
이 작품이 오타쿠 문화에 있어서 하나의 "창세기" 역할을 했다는 뜻일 가능성이 큽니다.
-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단순한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 철학, 심리학, 종교적 상징, 포스트모던적인 해체 기법 등을 활용한 작품으로서,
- 오타쿠 문화 자체를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린 작품입니다.
- 1990년대 후반, 일본은 경제 거품이 붕괴하면서 심각한 사회적 불안감을 겪고 있었음.
- 에반게리온은 이러한 시대적 불안을 반영하면서,
- 기존의 단순한 로봇 애니메이션(기동전사 건담 같은 전통적인 메카물)에서 심리적, 철학적 깊이를 가진 작품으로 진화.
- 이러한 점에서, 에반게리온은 단순한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오타쿠 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작품이 되었고,
- "이것이 우리들의 창세기"라는 말은 이 작품이 오타쿠 문화의 새로운 시작점이었다는 의미로 볼 수 있음.
4. 결론: 성경의 끝(계시록)이 오타쿠들의 시작(창세기)이 된다는 낭만성
- 요한계시록은 기독교적으로는 세계의 끝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암시하는 책.
-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구시대의 끝과 새로운 인류(혹은 새로운 개체성)의 탄생을 다룸.
- 또한, 이 작품은 오타쿠 문화의 새로운 시대를 연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 "이것이 우리들의 제네시스야."라는 표현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 이 작품이 오타쿠 문화의 기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한 표현이 됨.
👉 즉, 성경의 종말이 곧 오타쿠들의 시작이라는 생각은, 단순한 패러디가 아니라 깊은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는 셈입니다. 🎭
우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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