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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고 혼잣말

동아시아 진리부 말단 직원의 고백

《동아시아 진리부 말단 직원의 고백》

 : 무기력의 교육, 그리고 폐사(斃死): 오세아니아(Oceania)와 일본제국이 남긴 그림자 속에서

 

 

한국 사회는 “세계 10대 선진국”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그러나 그 겉모습과 달리, 내부를 구성하는 일상은 종종 부조리하다. 대부분의 직업군에서 요구되는 반복적인 교육과 끊임없는 행정 업무는 개인의 역량을 키우기 위한 과정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시스템의 과오를 개인에게 전가하기 위한 장치로 기능한다. 무리하게 구성된 제도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가 몰라서 그런 거야.”

 

이 말은 책임의 방향을 바꾼다. 시스템의 구조적 결함은 은폐되고, 사람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게 된다. 교육은 지식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복종을 훈련하기 위한 절차가 된다. ‘잘 안다’는 것은 ‘이의 제기 없이 따를 수 있다’는 의미로 환원되고, ‘모른다’는 것은 비난받을 이유가 된다.

 

이 구조는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1950)**의 소설 『1984』에 나오는 가상의 국가 ‘오세아니아(Oceania)’를 떠올리게 한다. 오세아니아에서는 ‘빅브라더(Big Brother)’의 감시 속에서 사람들이 살아간다. 진실은 재구성되고, 기억은 조작되며, 모든 교육은 체제에 순응하기 위한 훈련이 된다. 사람들은 ‘2 + 2 = 4’라고 말할 수 있는 힘조차 빼앗긴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은 또 다른 유령도 닮아 있다. 패망 직전의 일본제국.
제국 말기의 일본은 대외적으로 화려한 선전과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내부는 붕괴하고 있었다. 지나치게 확장된 관료 체계, 현장의 감각과 단절된 중앙 행정,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만들어진 국민들, 정지된 사고.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모두가 체제를 지키기 위해 말하지 않았다.

 

한국 사회에도 유사한 침묵이 흐른다. 묻지 않는 사람,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 조용히 견디는 사람이 살아남는다. 부당함에 대한 언급은 ‘문제제기’가 아닌 ‘문제인간’으로 낙인찍힌다. 이렇게 사람들은 점점 말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더 이상 스스로에게도 말하지 않게 된다.

 

그 속에서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가 그루밍(grooming) 범죄다. 겉으로는 디지털 성착취로 분류되지만, 본질은 신뢰를 가장한 통제, 침묵을 유도하는 조종이다. 어린 시절부터 침묵을 배우고,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훈련을 받아온 이들에게 이 범죄는 너무 조용하게, 너무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피해자는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채, 혹은 인식하더라도 ‘말할 수 없는 구조’ 속에서 조용히 꺼져간다.

 

이 사회는 교육을 통해 사람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무너뜨린다.


사람은 점점 말을 잃고, 이름을 잃고, 감정을 잃는다.


그러다가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조용히 폐사한다.

 

그리고 그는 그 선생님을 사랑했다. ( "And he loved the Tea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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